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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정 현대사 -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⑥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제1화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⑥


"염분 많은 부산에 철판 전동차라니"

 

전동차 규격을 놓고 정부와 부산, 부산과 서울업체 간 한바탕 벌어진 소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산 지하철 전동차 크기를 서울과 같은 규격으로 하라는 정부와 서울지하철 본부, 업체와의 압력을 논리싸움으로 이겨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정부 관련 부처와 국내 굴지 대형업체들은 '차량규격 표준화 회의'에서 전동차의 재질,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무조건 서울을 따라 할 것을 종용했다. 말이 회의지 전동차 규격을 정해놓고, 재질과 전기공급 방식까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서울과 통일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짐작건대, 부산공무원들은 지하철에 대한 지식이 얕은 '촌놈'이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 할 것이라 지레 판단하고 있는 듯했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미는 겁니다. 부산을 낮춰 봐도, 이렇게까지 낮춰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심사숙고하고, 여러 논의를 통해 내려야 할 중요한 결정을 무조건 따라라 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1980년 당시 부산 지하철 기획단장을 맡았던 임원재 씨, 계획계장 조창국 씨, 설계계장 이재오 씨, 전기계장 윤종육 씨 등의 기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산 지하철은 서울과 다른 것들이 여럿 있다. 업자 로비나 정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부산특성과 실정에 맞춘 것들이다.

 

▲부산 지하철 전동차는 국내 최초의 스테인리스 강판 소재로 만들었다. 업체로비를 받은 정부는 서울과 같은 철판 재질을 쓸 것을 종용했지만 "부산은 염분이 많아 금방 녹이 슨다"며 버텨 결국 뜻을 관철했다. 사진은 전동차 재질 결정에 앞서 1979년 임원재 당시 부산 지하철 기획단장과 부산공무원들이 서울지하철 군자차량기지 창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껍데기를 두고 한바탕 고성이 오갔습니다. 무조건 전동차 차체(외관 및 골조)는 철판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합당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서울 전동차 재질이 철판이니, 부산도 철판으로 해야 안전하다고 몰아세우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염분이 많을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철판은 금방 녹이 슬어 낭패를 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부산 지하철 전동차를 철판으로 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이댔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바다와 접한 구간이 많다. 당연히 지하와 대기에는 염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 특히나 중앙동∼서대신동 구간은 과거 해안 매립지역이다. 염분에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해야겠다."

 

그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정부와 업체 쪽에선 스테인리스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스테인리스 다루는 기술이 낙후돼 있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의 언쟁 끝에 부산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바다를 끼지 않은 서울도 15∼20년이면 껍데기가 녹이 슬어 전동차를 바꿔야 하는데, 부산은 금방 녹이 슬어 못쓰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부산 지하철은 국내 최초 스테인리스 강판 전동차가 됐다. 표면에 산화피막이 안정돼 녹이 슬지 않고, 현대감각과 아름다운 측면에서 우수한 1.2㎜ 스테인리스 강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1980년대 당시 서울지하철 1∼4호선 및 한국철도공사 전동차에 사용한 2㎜ 일반 압연 강판에 비해 부식되지 않아 유지보수가 간편하다. 내구연한도 크게 높다. 철판 전동차는 3∼5년 주기로 도장을 해야 한다. 번거로운데다 인력·예산 낭비가 만만찮다. 스테인리스는 녹슬 염려가 없는데다 차체가 가벼워 철판보다 10%가 넘는 전력 절감 효과도 누리고 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부산 지하철 건설이었지만, 선진 각국을 돌며 견학을 하고, 메모하며,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은 이미 지하철 건설 경험이 있는 '서울사람들'을 앞서 있었던 것이다.

 

부산 지하철이 서울과 다른 것은 또 있다.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다. 서울은 지하철 전동차가 지나가는 꼭대기에 설치한 전차선(전기공급 동선)이 천장에 붙은 고정식이다. '알루미늄 T 바' 밑에 동선을 붙여 전기를 공급한다. 그래서 이 동선은 늘 팽팽한 상태다.

 

부산의 전차선에는 알루미늄 T 바가 없다. 한 가닥을 늘어뜨려서 사용한다. 팽팽하지 않고 빨랫줄처럼 유동적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에도 큰 차이가 있다.

 

서울은 고정식이기 때문에 전동차의 롤링에 관계없이 팽팽한 동선이 전기를 공급한다. 당연히 동선의 마모가 심하다. 반면 부산은 한 가닥을 늘어뜨려 사용하기 때문에 전동차의 롤링 상태에 따라 동선이 아래위로 출렁거린다. 마모가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부산이 이 동선을 한번 갈아 끼우는 사이 서울은 무려 열 번, 교환횟수가 부산의 10배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사람들'은 "위험하다. 동선이 끊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부산사람들'은 끝내 뜻을 관철했다.

 

부산은 지하철 역사에도 서울을 능가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전동차의 브레이크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전동 브레이크를 쓰는 것은 같지만 부산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발생하는 전력을 재사용한다. 근처를 운행 중인 전차가 받아쓰던가, 역사에 필요한 전기로 쓸 수 있도록 시공했다. 이를 통해 부산은 1년에 23억 원어치의 회생전력을 사용한다. 서울은 브레이크 발생전력을 태워서 버린다. 회생전기를 쓸 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은 브레이크 발생전력을 태워 버리는 바람에 지하철 플랫폼이 엄청나게 덥지만, 부산은 그렇게 덥지 않다. 부산이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부산 지하철을 대견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 박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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