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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정 현대사 -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⑧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⑧

 

전두환 대통령 "전동차는 일본제로 하지"

 

"각하, 스웨덴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스웨덴 전동차값이 일본보다 조금 비싸긴 해도 차관조건이나 이자율, 거치·상환기간 등을 고려하면 스웨덴과 계약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1983년 5월, 당시 부산지하철 기획단장 임원재 씨는 전두환 대통령 앞에서 부산지하철 전동차 도입을 위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종호 부산시장과 임 단장, 두 사람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었다. 청와대 회의 석상에는 중앙정보부장과 내무·재무·건설·경제기획원·교통부 등 5부 장관, 비서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서슬 퍼런 5공 시절,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고 긴장감이 팽팽한 대통령 앞이었다.

 

대통령은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뭐, 거 부산은 인구도 많지 않고, 멀리서 꼭 가져올 필요 있나? 일본 것 같다가 쓰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서울지하철도 일본 걸 도입해 쓰는 것 같던데…."

 

대통령이 말문을 열자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장관들이 덩달아 거들고 나왔다.

 

"각하 말씀이 옳습니다. 일본도 기술이 좋고, 가까운 나라이니 멀리 유럽 쪽 보다는 도입하기가 수월할 겁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대통령의 한마디에 거침없이 결정이 내려졌다. 더 이상 토를 달 분위기가 아니었다.

 

"네, 각하 말씀대로 일본 전동차를 들여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각하, 전기·변전설비는 25%가량 에너지가 절약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합니다."

 

"그래? 그런 시스템이 있어? 그건 어느 나라야?"

 

"네, 각하. 스웨덴 것입니다. 에너지 절약 효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25%나 높고, 송전거리가 길어서 변전소를 드문드문 설치해도 됩니다. 토목공사비도 훨씬 적게 듭니다."

 

전 대통령은 잠깐 뜸을 들이며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그러면, 그건 단장 소신대로 하시오" 하고 명쾌하게 결정을 내렸다.

 

부산지하철 전기·변전설비는 그렇게 해서 스웨덴 기술력으로 시공하게 되었다. 청와대를 나서는데, 최종호 시장이 임 단장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이 사람아, 아무리 간이 커도 그렇지, 그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전기설비가 어떻고, 변전설비가 어떻고 쫑알쫑알 하노? 대통령 앞에서 그러는 사람 처음 봤다. 당신이 지금 나한테 결재받는 줄 아나?"

 

▲1983년 5월 전두환 대통령은 부산지하철 전동차의 일본 도입 결정을 내렸다. 애초 부산은 기술력이 뛰어난 스웨덴 전동차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최종호 당시 부산시장(왼쪽에서 4번째), 임원재 부산지하철 기획단장(왼쪽)이 부산지하철 도입 강재들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지하철 전반에 대해 일본 것을 선호하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었다. 서울지하철은 전동차에서부터 토목, 설비까지 모두 일본 것을 통째로 들여다 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한번 특정 나라의 것을 수용하면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 시스템으로 변경하는 것이 어려운 게 이쪽 분야 특성이기도 했다. 정부나 서울지하철 본부, 철도청, 건설업계는 부산도 당연히 서울을 따라 일본 시스템을 고스란히 도입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임원재 씨의 이야기다.

 

"부산은 일본을 탈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을 견학하고 공부하며, 기술력 측면에서 유럽 쪽이 일본을 훨씬 앞선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은 많은 사람을 태워 나르기 때문에 까딱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게 뻔합니다. 그래서 기술력에 대한 비교분석을 빈틈없이 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산지하철은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도입이라거나, 서울지하철보다 월등히 낫다거나 하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우선 부산지하철은 브레이크 시스템이 서울과 다르다. 브레이크는 그야말로 긴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말을 들어야 한다. 성능이 뛰어나야 하는 건 철칙이다. 부산지하철 전동차의 브레이크는 철도 브레이크로 가장 유명한 독일 '크노(knorr)' 사의 제품을 선택했다.

 

전동차의 쿠션 감을 결정짓는 스프링도 마찬가지다. 당시 서울지하철이나 철도는 일본제 코일 스프링을 사용했다. 부산은 영국제 '라바 샤브롱' 사의 고무 스프링으로 시공했다. 코일 스프링보다 승차감이 훨씬 좋다. 지금은 서울지하철과 우리나라 철도가 모두 이 고무 스프링을 쓴다. 부산이 가장 먼저 도입해, 전국 전동차와 열차로 확산시킨 것이다.

 

"전동차의 자동제어장치도 부산과 서울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뒷날 왜 돈을 많이 들여서 시공했느냐고 정부의 특별감사도 받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당시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부산지하철은 무인운전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전동차 운전석에는 스위치 2개가 있다. 스위치 하나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스위치 하나를 더 단 것이다. 기관사가 스위치를 작동하면 승객이 타고 내리는 전동차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다음 역까지 자동으로 운전하고, 정 위치에 정차하며, 다시 객차의 출입문을 여닫는 시스템이다. 기관사가 전동차를 출발하며 파란 버튼만 누르면 출발 - 자동속도 - 최고속도 -감속 – 정 위치 정차 - 전동차 출입문 개폐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수동으로도 얼마든지 운전을 할 수 있다. 서울지하철이나 철도는 당시 기관사가 이 모든 과정을 레버로 조작해야 하는 수동모드였다.

 

"부산지하철 정차지점은 승강장의 정 위치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30센티 미터를 벗어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 측에 이 조건을 충족시키어 달라고 요구했더니, 도저히 자신들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압박을 했지요. 좋다, 그럼 다시 대통령 재가를 얻어 일본 전동차 도입결정을 취소하겠다고 말입니다. 결국엔 그 요구에 맞추겠다고 손을 들었지요. 일본사람들 기를 꺾으면서, 끝까지 우리 뜻을 관철했습니다."

 

- 박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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