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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정 현대사 -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⑨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⑨

부산 전동차 서울 반값 계약…재질 더 좋아


"부산은 싼데 서울은 왜 2배냐" 대통령 추궁

가격협상, 허름한 여관서 007작전 방불케

10년 앞 내다본 역무자동화시설 전국 처음

 

전두환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부산지하철 전동차는 일본제를 들여오게 됐다. 최종호 부산시장과 임원재 당시 부산지하철건설본부장은 이 결정이 내려진 한 달여 뒤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국제입찰, 가격협상 과정을 거쳐 대통령의 최종 결재를 받기 위해서였다. 1983년 6월의 일이다.

 

▲부산은 서울의 절반값에 전동차를 도입하고, 전국 처음 역무 자동화 설비를 갖춘 도시가 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이 부산보다 훨씬 비싼 값에 전동차를 도입하고, 역무시설조차 재래식으로 했다며 엄하게 추궁했다. 사진은 1985년 8월 1일자 '부산 시보' 1면.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가 부산지하철을 시승하는 모습이다.

 

이 자리에서 임 본부장은 하마터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 담배를 꺼내 물기에 무심결에 제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습니다. 대통령께서 멈칫했고, 고개를 들어보니 경호원들은 그대로 저를 덮칠 기세였습니다. 옆에 있던 장관들도 얼굴이 노래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대통령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제가 들이댄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였고, 저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요."

 

보통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 제대로 보고조차 할 수 없었을 터지만 그는 태연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최 시장이 임 본부장에게 보고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동차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변전설비는 스웨덴, 역무 자동화 설비는 프랑스 업체와 계약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도쿄, 오사카, 파리, 뉴욕, 스웨덴, 홍콩의 지하철 전동차 1량당 가격이 어떻고, 기술력이 어떻고, 보고해 내려갔다. 대통령이 말을 막았다.

 

"그런데 이 사람아, 서울은 얼마에 도입했나? 가까운 서울을 놔두고 왜 먼 나라 사례만 비교를 해!"

 

"서울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서울 가격도 모르고, 지금 보고를 한다 말이가!"


서울 전동차 도입가격을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다만, 서울이 턱없이 비싼 값에 전동차를 도입했기에 거론하기가 마뜩잖아 말을 돌리던 참이었다. 대통령의 거듭된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대통령의 질문은 비서관을 향했다.

 

"자네는 알겠구먼! 서울은 전동차를 얼마에 사들였나?"

 

자칫하다간 불똥이 부산 쪽으로 튈 것 같아 대통령께 이실직고했다.

 

"각하, 참, 서울 전동차 가격은 보고서 맨 뒤에 붙어 있습니다."

 

전 대통령은 맨 뒷장을 들춰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뭐야 이거. 부산은 서울 반값이잖아! 서울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빨리 전화 걸어,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대!"

 

당시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은 김명연 씨로 전 대통령과는 친구 사이였다. 전화를 건네받은 대통령은 다짜고짜 몰아붙였다.

 

"김 사장, 야 이 사람아, 부산은 반값에 산다는데 너거 서울은 왜 그리 비싸게 샀어? 내용 조사해서 보고해!"

 

대통령이 고함을 지르고 난 뒤 한동안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부산보다 지하철을 먼저 건설한 서울은 지하철 전반에 대해 일본 것을 선호하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었다. 서울은 전동차에서부터 토목공법이나 모든 설비까지 일본 것을 통째로 들여다 시공했다. 정부나 서울지하철공사, 철도청, 건설업계는 부산도 당연히 서울을 따라 일본 것을 고스란히 도입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사업을 독점하다 보니 일본은 가격에서도 바가지를 씌우고 있었다.

 

부산은 대통령 결정에 따라 일본 전동차 도입을 전제로 일본의 마루베니사와 미쓰비시사 두 업체를 대상으로 국제입찰을 시작했다. 미쓰비시는 '대우'와 마루베니는 '현대'와 컨소시엄을 구성, 입찰에 응했다. 대우차량본부장이 어느 날 서울 출장길에 식당으로 찾아왔다. 어차피 대우가 서울지하철 1∼4호선까지 미쓰비시 기술과 주요 부품으로 모든 전동차를 제작·납품하고 있는 마당이니, 부산지하철 역시 ‘대우’가 할 게 뻔하다, 잘해 보자는 것이었다. 부산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못마땅했다.

 

가격협상이 시작되자 대우는 직원들을 부산에 내려보내 입찰정보 캐기에 혈안이었다. 입찰서 비교평가를 할만한 근사한 호텔은 모두 들쑤시고 다녔다. 임 본부장은 지하철건설본부 인근 허름한 여관을 택해 입찰서 비교평가를 시작했다. '대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참여한 직원들도 열흘 넘게 여관에 감금하다시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대우측 직원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소문이 새어나가면 가격협상이고 뭐고 말짱 헛일일 터였다.


대우와 미쓰비시사는 협상과정에서 현대와 마루베니사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당연히 마루베니사로 낙점했다. 임 본부장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부산전동차 1량당 평균가격은 3억 5천만 원 남짓에 결정했다. 서울은 5억 6천만 원 정도였다. 게다가 서울전동차는 철판이고, 부산전동차는 철판보다 훨씬 비싼 스테인리스 재질인 점을 고려하면 전동차 1량 값 차이가 2배도 더 난다는 결론이었다.

 

다시, 대통령에게 보고를 이어갔다.

 

"각하, 부산은 역무 자동화 설비를 하려고 합니다. 10년 안에는 사람이 하는 게 싸게 먹히지만, 10년 앞을 내다보면 자동화를 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힙니다. 탑승객 집계도 쉽게 낼 수 있습니다."

 

"그래 맞다. 10년 앞도 못보고 할 수야 없지. 서울은 하고 있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비서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비서관, 서울은 하고 있지?"

 

"서울은 안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서울지하철공사 전화 대!" "김 사장, 도대체 뭐하는 거야! 부산도 자동화한다는데, 서울은 왜 재래식이야! 이 사람들이 정신이 있어 없어. 조사해서 보고하고, 즉각 자동화하도록 해!"

 

며칠 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언론에 대서특필하기에 이르렀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급기야 김명연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을 국회로 출석시켜 전동차 가격비교에 역무 자동화 설비를 뒤늦게 하게 된 사실을 집요하게 추궁했고, 김 사장은 결국 대답을 하다못해 눈물을 흘리고 퇴장했다. 서울지하철공사나 김명연 사장을 골탕먹이려는 것이 아니었지만, 두고두고 가슴이 아팠다. 서울은 서둘러 역무 자동화 설비를 다시 했다.

 

결과적으로 부산은 서울의 절반값에 전동차를 도입했고, 전국 처음 역무 자동화 설비를 갖춘 도시가 되었다. 당시 역무자동화설비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환승 시스템이나 탑승객 집계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 박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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