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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제작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 부산 원도심에 있었다.


부산민학회, 해설을 듣는 모습.


얼마 전 부산민학회(회장 주경업)는 ‘내사랑 부산, 바로 알자’ 제 4단계로 부산 원도심의 잊혀진 극장을 찾아 나섰어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 터를 시작으로 국제극장, 현대극장, 상생관, 행좌 등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극장의 흔적을 찾아 원도심을 누볐습니다.

 


▲옛 조선키네마주식회사 자리


인근에 살던 어르신의 증언에 따라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있었던 곳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있었다는 표시를 골목 입구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러시아가 일본에 패해서 건물이 비어 있던 러시아 영사관 자리를 빌려서 영화사를 차린 것인데요. 돈과 기술은 일본에서 대고 조선의 배우가 출연해서 부산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영화 4편이 제작되어 일본을 수출을 했으니 당시로선 참으로 대단한 영화제작사였습니다.

 

우리나라 영화는 처음에는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입체영화로, 1950년대 칼라영화가 만들어지고, 시네마스코프로 발전하였구요. 무성영화는 변사가 나와서 등장인물의 대사 등을 설명하였는 방식이다 보니 배우 다음으로 변사의 인기가 높았어요. 그러다가 발성영화가 나오면서 변사라는 직업이 사라지게 되었죠. 이런 면에서는 영화계의 명암이 꼭 배우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에 원본 필름 하나만 만들어졌던 그 당시에 여러 극장이 동시에 상영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웃지 못 할 숨은 이야기들이 수 없이 많았답니다. 처음 상영 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면 다음 상영할 영화관으로 전달을 해야 하는데 전차가 가장 빨랐던 시대에 남포동에서 서면까지 가기란 쉽지 않았다고 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사고가 나기도 하고, 전차를 타고 가는데 고장이 나서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요. 그러면 영화관에서 기다리던 관객은 휘파람을 불어대고, 영사실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엄밀하게 본다면 약간의 시간을 두고 상영되었던 것입니다.

 

▲옛 영화관 욱관 자리


일제강점기 때 영화관이 중구에 많이 생기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1877년 고종황제로부터 일본이 공식적 합법적으로 일본인 거류지로 인정받은 곳이 바로 이 부근이었어요. 따라서 상업 활동이 가장 많았던 곳이며, 주거 인구가 집중된 곳이었으니 영화의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었죠.


 

▲옛 소화관 동아극장 자리


행좌는 1903년경 부산부 남빈정(현재 남포이음 1길 할매회국수 자리)에 세워진 부산 최초의 극장입니다. 1915년 행관으로 신축하여 부산 영화 상영관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1931년 소화관으로 문을 연 동아극장은 그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중한 건물이예요. 물론 외관에 다른 시설물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동그란 창틀 등 그 당시의 건축 양식을 찾을 수 있어요. 용사회관으로 개관한 대영극장은 현재 대영시네마가 되었으며, 혜성극장은 부영극장으로 광명극장은 국도극장이 되었다가 현재 CGV 남포가 되었어요.

 

▲옛 국제극장 자리


▲옛 현대극장 자리


학생 전용 극장이었던 아카데미극장, 해방 이후 미군전용 극장이었던 보래관은 이후에 문화극장으로 바뀌었다가 1973년 문을 닫았어요. 지금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산지점이 있는 위치에 현대극장(1955년)이 개관을 했고, 40계단문화관 소라 계단 아래 마트가 옛날의 국제극장(1956년)이 있었습니다. 현대극장과 국제극장 모두 3층 건물로 좌석이 1,215석과 1,168석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극장들이었죠.

 

그 당시의 극장가를 지나가면 영화를 보지 않고 간판만 봐도 뿌듯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옛날 기억에 새로운 영화가 극장에 걸릴 때마다 영화 간판이 바뀌었던 게 기억나네요. 1970년대 TV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극장을 찾던 관객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고 이로 인해 그 많던 극장들이 하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경제적인 목적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배우가 출연했고,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들이니 우리나라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로 인해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된 것이 아니라 조선키네마주식회사, 행좌, 소화관, 현대극장, 국제극장 같은 역사 속에 묻혀간 제작사와 영화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없다고 하지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극장들이지만 기억하고, 또 알려야합니다. 부산을 영화의 도시라 기억하듯이 사라져간 극장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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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덕찬 2014.10.21 17: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가 어렸을 때도 남포동에 가면 여러 극장들이 줄지어 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 장소에 다른 건물을 다 들어서 있더라구요. 옛날부터 쭉 영화산업으로써는 부산이 어느 도시보다 앞서 나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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