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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반장의 부산이야기] 가장 부산다운 모습



 

“저기요.. 사진 쫌 찍어주실래요”

부드러운 서울 말씨에 뒤를 돌아다보니 한 무리의 여대생들이 부산역을 배경으로 서있다. 

“부산에 여행오셨나봐예?”

최대한 상냥한 말씨로 물어보기는 했지만 무뚝뚝함이 묻어난다.

“네.. 부산 바다가 예쁘다고 해서 여행 왔어요”

카메라 화면속의 여대생 네 명은 예쁘게 웃으며 대답한다.


여기는 부산역 앞이다.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이 부산을 여행하고자 부산역을 찾고 있다. 철도청의 통계를 보니 2014년 한해 부산역을 통해 하차한 인원이 9,433,574명이라고 한다. 그중 순수 여행객들을 20%만 잡는다고 해도 연간 189만명, 하루 평균 5,200여 명이 부산역을 통해 부산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항공과 고속버스, 자가용을 이용해 부산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빠져있다.



필자는 부산의 손반장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부산여행특공대를 운영하면서 부산의 산복도로와 원도심을 여행으로 알리고 있는 부산전문스토리텔러이다. 


이름부터 특이한 부산여행특공대는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같은 부산의 명소가 아닌 ‘부산사람도 모르는 진짜 부산이야기’라는 주제로 가장 부산다운 모습을 찾아내고 숨겨진 부산의 속살을 돌아보는 여행을 여행자와 함께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가 말하고 싶은 가장 부산다운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필자는 부산을 ‘숲과 도심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로 정의 내린다. 어디까지가 숲이고 어디까지가 도심인지 모를 정도로 산중턱까지 빼곡하게 집들이 차오른 도시, 산중턱을 관통하는 산복도로에 끝없이 펼쳐진 오래된 집들과 바다를 보며 과거와 현재의 모호한 시간의 경계를 느끼며 미래를 꿈꾸는 도시가 부산이라 말한다. 그리고 숲과 도심의 모호한 경계를 가로지르고 과거와 현재의 모호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산복도로에서 산동네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바다를 보는 풍경이 가장 부산다운 모습이라 말한다.



부산은 2009년부터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산복도로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산복도로에는 많은 거점시설들이 생겨났다. 또한 산복도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동시에 재조명 받으면서 산복도로는 부산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가난한 산동네로 치부되었고 부산사람들에게도 소외당했던 이곳이 이제 부산의 보물로 평가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니, 산복도로 주민들에게도 부산사람들에게도 아이러니가 분명하다. 하지만 산복도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갑자기 생겨난 관광명소도 마을도 아니다.



1876년 일제에 의해 부산이 강제 개항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가로웠던 현재의 원도심의 어촌과 바다는 매립되었고 항만의 건설 등으로 근대 부산항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매축과 부두공사가 진행되면서 가난한 조선인노무자들은 저임금으로 공사에 동원되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갖은 수탈로 농촌이 붕괴되었다.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온 조선인들과 일본으로 도항하기 위해 부산에 왔다가 정착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평지에 자리 잡지 못한 채 산으로 올라가 조선인 부락을 만들며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피란시기에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산 위에 움집과 판자집을 지으면서 부산의 산동네는 커져갔고 전쟁 후 남겨진 빈집들과 산 위의 남은 공간들은 경공업 발전시기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들어온 가난한 도시노동자들에 의해 발 디딜 틈 없는 산동네 마을로 변화하였다. 



부산의 관문 부산항과 부산역의 정면에 놓인 부산의 산동네는 전쟁이 끝나면서 미관상의 문제, 화재와 전염병의 문제 등으로 강제철거가 되기도 하고 구호와 개량 등의 여러 명분으로 강제이주와 정책이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심과 가까운 지리적요건과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없었던 끈질긴 삶의 의지로 산동네 사람들은 이곳에서 굴하지 않는 삶을 이어나갔고 갈등과 고통 속에 피어난 산동네 사람들의 희망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막다른 듯 다시 통하는 산복도로 속 골목이 되었다.


이렇듯 산복도로가 지나는 산동네 마을은 부산의 근현대 역사와 괘를 함께했고 질곡의 역사를 버텨온 우리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소중한 삶터이자 희망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경제발전과 개발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것만을 바라보길 원했던 시각들에 가려져 숨겨지고 외면 받아왔던 산복도로가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도시를 바라보는 눈이 맑아지면서 이제야 보석처럼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식상한 부산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부산이 펼쳐지면서 왠지 허전했던 빈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지도 모른다. 산복의 도시와 바다를 품어온 부산사람들의 희망이 가슴을 파고드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이 순간의 감동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 산복도로를 다시 찾게 만들지도 모른다.  



168계단에서 물이 귀했던 시절의 삶을 몸으로 느껴보고 유치환의 우체통에서 부산항과 산복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1년 뒤에 배달되는 엽서를 써보자. 산복도로버스에 몸을 싣고 꽃비를 맞으며 벚꽃 길을 달려보자. 저 멀리 영도가 신선의 섬이 되어 손짓하고 영도와 자갈치 사이를 흐르는 부산의 바다가 정겹게 맞이하는 천마산로에 올라 진짜 부산의 모습을 바라보자. 부산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세대 고 최민식 선생님의 갤러리에서 부산사람들의 또 다른 얼굴들을 가슴에 품고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위에 만들어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부산사람들의 희망을 느껴보자.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에서 다 채워지지 못했던 부산의 의미, 감천문화마을을 돌아보며 어렴풋이 잡힐 듯 했던 부산의 진짜 모습이 산복도로 곳곳에 펼쳐져 있다.화려함은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뜨거움이 있는 곳, 불편함은 있지만 걷다보면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곳.


"부산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꼭 한번 산복도로에 서서 부산을 바라보자."


오늘도 필자는 허전한 가슴을 달래려 산복도로를 걷고 또 걷는다.





Trackback : 0 Comment 2
  1. 2016.04.08 22:55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쿨부산 2016.04.09 21:09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쿨부산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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