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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반장의 부산이야기] 흰여울문화마을과 흰여울길


저번 주말이다. 손반장은 부산의 원도심 여행에 관심이 많은 특별한 여행자들과 함께 한층 뜨거워지고 있는 부산, 그중에서도 영도(影島)에 위치하고 있는 흰여울 문화마을을 찾았다. 평소에 부산을 좋아하고 여러 차례 부산여행을 했지만 허전함이 늘 존재했었다는 말과 함께 여행자들의 오늘 여행은 기대가 컸다. 



영도 보건고등학교를 지나 이송도 곡각지에서 버스를 내린다. 버스에서 내려 버스 진행방향과 나란히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계단이나 길을 통해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면 흰여울길을 만나겠지만 버스진행방향 반대로 걸어 영선낚시점과 유스타빌라 사잇길로 접어든다. 



사잇길에 접어든 순간 펼쳐지는 풍경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을 내지른다. 오른쪽으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나타나는 단순한 바다의 풍경이 보인다면 왼쪽으로는 하늘과 산의 경계가 나타나고 산과 집의 경계가 나타나고 집과 절벽의 경계가 나타나고 절벽과 바다의 경계가 나타나는 아주 복잡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흰여울문화마을이 나타난다. 




흰여울은 흰과 여울이 만난 말이다. 흰은 흰색을 의미하고 여울은 빠르게 흐르는 작은 개울을 뜻한다. 한마디로 봉래산에서 쏟아져 절벽으로 떨어지는 여러 개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위에 존재하는 흰여울 마을은 피란시절에 형성되기 시작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과 문현동 돌산마을과 더불어 피란시절 벼랑 끝에 몰린 삶을 살았던 부산사람들의 삶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며 가장 힘들고 가난했던 마을이었다. 




위로는 공동묘지, 아래로는 절벽이었던 최악의 환경에 대풍포(大風浦)라는 지명이 보여주듯 작고 큰 바람이 늘 부는 곳이 흰여울 마을이었다. 태풍이 부산 남항을 통해서 들어오면 태풍의 오른쪽에 위치하여 늘 피해가 많았고 실제로 59년 태풍 사라호, 87년 태풍 셀마 때 바로 직격탄을 맞은 곳도 흰여울 마을이었다. 


최악의 주거환경을 버티는 것도 힘들었건만 현재의 절영로가 지나는 도로를 경계로 윗마을 사람들의 괄시까지 더해져 흰여울 마을에서의 삶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속의 삶이 이어졌다. 절벽의 틈새를 파고든 집이 집다울 수는 없었고 집다울 수 없는 집에 화장실은 언감생심이었다. 절벽 위에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삶이 이어지고 하루하루 고된 노동에 지친 삶이 이어졌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희망이 있고 꿈이 있었다. 흰여울마을도 다름이 아니었다. 다만, 어른들이 그랬듯 소박하다면 소박한 것들이 큰 꿈이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부모님의 희망은 내 자식들이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고 자식들의 희망은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자식들은 이곳을 떠나면서 자주 오겠다며 웃음을 보였지만 그토록 지긋했던 가난과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떠난 뒤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어디 우리네 어른들이 원망이나 하는 존재였던가? 그저 보고 싶은 마음을 정든 이웃사촌들의 미소로 녹일 뿐이며 저 멀리 바다를 보며 삭힐 뿐이다.  





요즘 들어 흰여울문화마을과 절벽 사이의 경계선이자, 하늘과의 경계에 놓인 흰여울길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늘 있어왔던 곳이지만 영화 ‘변호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새로운 명소의 탄생이라도 되는 듯 많은 사람들이 흰여울길을 걷고 흰여울마을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다. 어떤 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한국의 산토리니’니 ‘부산의 산토리니’니 하는 비유들을 쏟아놓기도 하지만 비록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한 산토리니에서 손반장은 치열한 삶의 애절함과 희망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함께 한 사람들을 세워두고 영화 변호인 촬영지의 집 계단에 앉아본다. 주인공 송강호가 앉아 국밥집 주인역의 김영애를 기다리다 잠이 든 그 곳에서 눈을 감으며 머리를 살짝 벽에 기대어 본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힌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 김영애씨가 국밥집 주인으로 나오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영애씨는 실제 이곳 영도출신입니다. 극중 아들이 경찰들에게 잡혀간 뒤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고 김영애는 송강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갑니다. 사무실에서 송강호를 향해 ‘니 변호사 맞제? 변호사님아 니 내쫌 도와도. 니 밖에 없다.’라고 했던 애절했던 장면이 기억나실 겁니다. 이후 송강호는 선약을 처리하고 김영애의 집을 찾았고 바로 이 계단에 저처럼 앉아 김영애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듭니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김영애는 계단에서 잠든 송강호를 알아봅니다. 조심스럽게 그를 깨운 김영애는 ‘변호사님. 우리 변호사님 아이가. 고맙데이.. 참말로 고맙데이’라며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모두들 손반장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손반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에 있으니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데요”


여행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손반장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변호인 촬영당시 이 집은 빈집이었는데요. 집 주인분도 극장에서 영화 변호인을 보다가 자기 집이 촬영장소로 사용 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아무튼 영화 변호인 이후 이곳의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찾아오면서 흰여울마을과 흰여울길이 외부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영도구청과 부산관광공사, 부산시의 노력으로 벽화도 그려지고 마을의 환경들도 조금씩 정비가 되어 지금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졌답니다. 현재 이집은 영도문화원에서 집주인으로부터 무상으로 임대를 받아 흰여울문화마을의 하나의 거점시설 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렇게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답니다.”


계단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며 집안으로 들어가 본다. 작은 방 하나하나가 각각 독특하고 정감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의 공간이 되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니 여기저기서 셔터소리와 행복한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카메라를 향한 얼굴들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뚜우~’하고 어디선가 들리는 뱃고동소리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마침 손반장과 함께 온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고 사람들은 사진을 같이 찍자며 손짓을 한다. 손사래를 하며 고개를 드니 셀카봉을 든 누군가의 어깨동무 사이로 바다와 묘박지가 눈에 들어온다. 


예쁘다. 너무너무 예쁘다. 

하늘과 바다와 집들과 길과 사람들. 모두모두 예쁘다. 

이곳에 서있는 너와 나도 예쁘다.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 공간과 흰여울길이라는 길은 잠시 스쳐가는 우리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마을 곳곳에, 길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새로 칠해진 벽 뒤로 보이는 거친 블록 돌을 손바닥으로 쓸어 본다. 벗겨진 시멘트 바닥 위를 걸으며 녹색 우레탄이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을 살짝 두드려본다. 난간아래 보물창고처럼 굳게 잠겨있는 세탁기보관창고에 등을 기대고 문틈사이로 삐져나온 끝이 찢어진 갈색슬리퍼를 문안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난간에 턱을 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른 바다가 눈 안으로 들어온다. 푸른 바다와 맞닿은 육지의 경계선으로 아름다운 절영해안산책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걷고 싶다. 걷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변호인 촬영지 옆 무지개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절영해안산책로를 걷는다. 





그렇게 우리는 흰여울을 떠나간다. 가슴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따스한 마음들을 품은 채 흰여울을 떠나간다. 정면으로 병풍 같은 반도보라아파트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절영해안산책로 입구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해안가 굵은 바위들은 없어지고 왼쪽으로 자갈해안이 나타난다. 걸음을 멈추니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갈해안으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자갈들을 괴롭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 흰여울문화마을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자갈해안을 바라본다.   

 


파도는 끊임없이 자갈들을 괴롭히며 소리를 내고 있다. 

오늘 우리도 그저 밀려왔다 밀려가며 흰여울을 괴롭혔던 못된 파도이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흰여울을 조금 안다고 온 내가 미안했다. 

하지만 흰여울은 오늘도 아무런 말이 없다.

흰여울을 바라보며 곱게 단장한 작은 바람개비만이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Trackback : 0 Comment 4
  1. 강월드 2016.06.27 10: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좋아요

  2. 손반장 2016.06.27 15: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감사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3. 학생1 2016.10.23 15: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에서 부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4. 2017.09.24 16:2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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