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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반장의 부산이야기] 추억의 용두산에 오르다


옛날이다아니 그렇게 오래된 옛날은 아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하더라도 부산을 여행으로 방문하면 반드시 들려야 했던 유명한 명소가 있었다부산여행 중 이곳을 찾지 않고 돌아갔다면 제대로 부산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고 믿어졌던 곳이었고 지금도 외국인 단체관광객이나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곳이 있다.


70~80년대 이전의 태생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당시 부산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 혹시라도 있다면 반드시 여기서 찍은 사진 한 장은 기본으로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곳.

 



그렇다. 바로 용두산공원이다. 당시 부산여행 중 용두산공원의 이순신장군 동상이나 꽃시계 앞에서 부산타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면 아마 간첩소리를 듣지나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부산여행의 선호도에서도 밀리고 부산 여행을 계획할 때에도 애초에 관심 순위에 조차 들어가지 않는 곳. 일부여행객들에게는 없어도 되는 양념처럼 여겨져 연등축제 등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날이 아니면 계획조차 포함되지 않는 곳이며 지금은 부산시민들 조차 잘 찾지 않는 용두산공원은 한때 부산여행에서 빠지면 안 되는 최고의 명소 중 하나였다.


▲부산타워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손반장의 기억 속에도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용두산공원에 처음으로 갔던 날은 추억보다도 더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날은 아버지와 함께였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함께 남포동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두산 공원에 올랐던 것 같은데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계단을 한참 오르고 올라 용두산공원에 처음으로 올라섰을 때 비둘기 떼들은 하늘을 날고 밝은 햇살 아래 푸르른 잎사귀를 두른 나무와 꽃들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찰칵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깨에 카메라를 맨 사진사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오고 커다란 침들이 돌아가고 있는 꽃시계가 눈앞에 보였다. 꽃시계 뒤로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었고 멀리서만 보았던 하얀색 타워가 바로 눈앞에 놓여있었다.


아부지 저게 뭐지예?”

저거는 부산타워라 하는 긴데 부산에서 제일 높은 탑이었고 저어기 꼭대기 위에 전망대가 있는데 올라가보면 부산이 다 보인데이. 멋지제? 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다아이가

..”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셔터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비둘기를 좇으며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어린 손반장은 눈에는 하늘을 향해 솟구친 부산타워만이 있었고 하늘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타워에 이끌려 멍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타워 앞에 섰다. 고개를 끝까지 들어서 쳐다보다보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웅장했던 모습에 넋이 나가고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그때 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어깨에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다 아버지의 얼굴과 마주쳤는데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후들거리는 다리가 진정 되기도 전에 우에 함 올라가볼래라고 말씀 하셨다. 무섭다는 뒷걸음질도 소용없었다. 괜찮다고 웃음을 지으시는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아버지의 손은 내손을 힘껏 잡고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아버지의 따뜻했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건물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어린 눈이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만 지으실 뿐 말이 없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우리는 사람들에게 밀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뒤 쿵하는 진동과 함께 머리는 하얘졌다. 어디선가 120M43초 만에 오른다는 말이 귀속으로 들어 왔지만 머릿속으로 이동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고사리 손은 아버지의 손을 꽉 부여잡을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착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재빨리 밖을 향해 뛰쳐나왔지만 다시한번 숨이 막혔다. 안도의 한숨도 쉬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유리창 너머의 풍경에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어른들의 커다란 감탄소리와 동시에 나도 분명 감탄사를 외쳤지만 그것은 감탄이 아닌 고소공포의 외마디였다. 울고 싶었던 마음을 숨을 몇 번 들이마시고는 겨우 진정시켰다. 진짜 전망대는 위에 있다는 아버지를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정말 한 층이 더 있었고 진짜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 오른 어른들은 다시한번 감탄사를 외쳤고 아버지도 얼굴이 상기되어 처음 온 사람처럼 바깥 풍경을 보시며 좋아했다. 전망대는 어른들의 허리높이부터 위쪽으로 360도에 걸쳐 투명한 유리창이 설치되어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든 부산이 다 보였다.


자세히 보니 유리창은 비스듬하게 걸려 있었다. 전망대 바닥보다 전망대의 천장이 넓은 구조여서 유리창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래쪽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비스듬한 구조로 걸려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 허리높이에 난간처럼 놓인 넓은 돌에 배를 붙이고 뒤꿈치를 들어 창밖을 내려다보니 꼭 타워가 앞으로 넘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에 깜짝 놀라 뒤로 한참을 물러섰다.

 

집으로 돌아온 뒤 처음 만났던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는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고 대단함 그 자체였고 어린 심장을 힘차게 뛰게 만들었던 아드레날린이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 이야기를 했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 친척들이 부산에 오신다고 하면 용두산공원에 다시 가기를 은근히 기대했었고 실제로도 몇 번을 더 갔었지만 첫날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친구들과 함께 용두산공원을 몇 번이나 더 찾았지만 역시나 그 아찔했던 감동과 쭈뼛거렸던 떨림은 결코 처음만큼 강렬할 수 없었다.

 


나의 일터인 초량과 부산역, 그리고 원도심과 산복도로의 각 장소에서 용두산쪽을 바라보면 하얀색의 부산타워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멋진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산사람들에게 부산타워는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기에 별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치부된다.

 

한때는 부산 최고의 명소로 여행객들과 부산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시대의 변화속에서 여행자들의 취향은 달라지고 유행의 변화속에서 여행자들의 관심은 딴 곳으로 쏠리면서 더 신기하고 더 자극적이지 못한 용두산공원은 그저 그런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용머리산에 용이 살았는지 용이 산으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용두산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 일본인이고 그 이후부터 용두산이라는 이름이 계속 불리어 지고 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1970 용두산 공원(출처:부경근대사료연구소)


용두산에 대한 대대적인 관심은 조선후기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용두산 아래 11만평 부지는 세계 유일의 일본인 마을인 초량왜관이 있었던 곳이며 개항이후 초량왜관부지는 일본인들만 사는 전관거류지가 되었다. 이후 누군가에게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풍수지배설이야기지만 일제는 용두산을 용이라 생각해서 용의 눈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쇠말뚝을 박았고 용의 허리는 대청로라는 길을 만들어 끊어버렸다고 한다.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믿었던 용미산도 허물고 거기에 시청에 해당하는 부산부청(현 롯데백화점 광복점자리)을 세워 부산속의 용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1970 용두산 공원 주변 (출처:부경근대사료연구소)


1876년 일제에 의해 부산항이 강제개항 되고 일제강점기 직전부터 용두산에는 일본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내내 용두산신사가 있는 용두산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이었다. 625전쟁 때 용두산은 피란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판잣집을 짓고 사는 최악의 삶의 터전이었고 전쟁 이후인 1954년에는 판잣집들에 대화재가 일어나 용두산이라는 이름은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화재 이후 용두산의 판잣집들이 철거된 자리에는 나무가 심어지고 1957년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공원이라는 도심속 근린공원이 개장되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은 또한번 용두산으로 집중되었고 419혁명이후 우남공원이 용두산공원으로 개칭되면서 용두산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절정은 1973년이었다. 부산 최악의 흉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산업화를 통한 도시의 도약과 발전의 상징으로 용두산공원에 전국 최초로 120M의 전망대인 부산타워가 세워지고 그 속에 43초만에 120M의 전망대에 오르는 초고속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용두산은 전국에서도 대단한 곳이 되었고 절정의 관심 속에 부산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용두산 공원에 올랐다. 남포동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힘도 들이지 않고 오르니계단 위로 새로 만들어진 인공폭포가 반겨준다. 많은 것이 옛날과 달라졌다. 작은 아파트 같던 비둘기집도 사라졌고 광장둘레 있던 간이매점들도 사라졌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옆으로 옮겨졌고 더 넓어진 광장에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예전에는 없던 대형버스 여러 대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부산타워로 올라가는 계단의 왼쪽에는 벤치에 앉은 유명여배우의 마네킹이 있고 오른쪽에는 하얀 여의주를 품은 용탑이 있다. 부산타워 쪽을 향해 계단을 오르니 수많은 연인들의 자물쇠가 줄에 매달려 있다. 예전에는 없었던 자물쇠들은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 녹이 슬고 빛이 바래어진 채 흘러간 시간들을 애써 외면하는 듯 매달려 있었다.

 

부산타워 바로 아래에서 아래 광장 쪽과 주위를 돌아본다. 한국사람은 몇몇 연인들을 제외하면 거의가 계단과 벤치에 앉아 바둑과 장기를 두는 노인분들 뿐이고 대부분이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다.

 

뒤를 돌아보니 부산타워는 여전히 위용 있는 자세로 손반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의 웅장함과 자신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하얗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백발의 힘없는 노인 같은 모습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용머리산에는 용이 없다. 아니 찾는 이의 발길마저도 뜸하다. 여전히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부산타워는 부산을 내려다보고 부산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외로운 외뿔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부산타워를 잠시 잊은 부산사람들에게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다. 타워에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산의 풍경은 여전히 대단하고 아찔한 모습이라는 것을.


오늘밤 만약 당신이 부산에 있다면 용두산공원에 올라 옛사람들의 추억 속 길을 따라 한번 걸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기대 없이 부산타워 전망대에도 꼭 한번 올라가 보길 바란다. 어쩜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야경이 부산 최고의 야경일지 누가 알겠는가? 분명한 것은 어떤 모습을 상상했던지 간에 부산타워에서 바라보는 부산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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